“캐롤라인은 물건을 구입할 때나 어떤 행동을 할 때 친구들의 생각에 신경을 많이 쓰는 밀레니얼 세대다. 제품에 대한 남들의 조언이나 평가가 필요해서 쇼핑할 때 친구와 함께 가서 봐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구지 친구에게 백화점을 같이 가자고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 집에서 홀로그램 컴퓨터와 가상공간을 통해 쇼핑도 하고 친구들의 조언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백화점은 캐롤라인의 취향과 몸매에 맞춰 옷을 추천하는데 흠잡을 때가 없다. 이미 몇 차례 이용한 정보와 기록이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에서 추천한 옷을 가상공간을 통해 입어본 모습은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됨으로써 친구들의 실시간 반응을 볼 수 있다.”

멀지않은 미래에는 공장, 사무실, 병원 등에서 가상의 공간 속에 정보를 띄워놓고 서로 공유하며 그 속에서 생활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가상 스포츠는 물론 가상 레저도 즐길 수 있다. 숲속에서 나무의 향기를 맡고 새소리를 들으면서 산책하고, 몰디브 해안의 아름다운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집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온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그들의 융합에서 온다.

최근에 삼성 호주법인은 원거리 통신과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하여 호주대륙 반대편에 있는 남편에게 만삭인 아내가 아이를 순산하는 모습을 생중계 서비스를 함으로써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생생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기술을 선 보였다. 그런가 하면 스코틀랜드의 스타트업 기업 테슬라 스튜디오Tesla Studio는 몸 전체를 감싸는 가상현실(VR)용 수트 제작에 들어갔다. 테슬라수트Teslasuit로 불리는 이 수트는 보기에 다이빙 수트와 흡사한 형태를 지녔다. 이 수트는 모듈이 전체적으로 둘러 쌓여 있다. 기본적으로 이 수트는 오큘러스 리프트 같은 VR 시스템과 연동돼 사용되도록 디자인됐지만, 수트 자체의 제어 장치를 사용해서 고유의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할 수도 있다. 필리얼 VR 마스크Feelreal VR Mask는 가상현실 헤드셋이 만든 영상에 맞춰서 냄새와 바람, 진동, 분무 등을 곁들여 더 현실감 넘치는 가상 체험을 돕는 제품이다.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의 기술진화론에 의하면 우리는 지금 4시대에 살고 있다. ‘기술시대’라고 불리는 이 4시대는 인간이 기술을 창조하고 정보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저장하는 시대다. 레이 커즈와일은 기술을 저장하는 방식에 따라 시대를 구분하고 있는데, 그는 4시대가 지나면 인간의 두뇌지능과 인간이 만든 하드웨어 기술이 융합되는 5시대가 온다고 말한다. 또 이렇게 인간의 지능과 기술이 융합되어 인간의 지능이 증폭되면, 그 발전 속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빨라지고 마침내 온 우주의 정보를 알게 되는 6시대가 온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의 지능과 기술이 결합되는 5시대를 2029년부터 2045년 사이로 예상하고 있다. 2029년이면 IT기술이 인간의 두뇌능력을 초월할 것이며, 인간 지능의 패턴인식 능력과 기계지능의 속도, 기억력, 정확성, 지식체계가 결합되면서 폭발적인 지식증폭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후에는 기술 발전 속도가 더 빨라져서 2045년 정도가 되면 인간의 의식을 다운로드 받아서 인간의 의식을 갖는 무생물에 전달하면, 그 무생물의 지능이 인간지능의 10억 배 수준에 이르는 특이점Singularity이 발생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특이점을 위한 기반 기술로 유전자 공학의 발달, 나노, 바이오의학의 발달, 그리고 로봇과 인공지능공학의 발달을 들고 있다.

문제는 이런 모든 가상현실 속의 체험이 고스란히 다양한 센서와 접촉 기기들의 로그를 통해 데이터로 수집되고 저장될 뿐만 아니라 일정부분 통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ICT 미래를 예측하는 전문 리서치 기관인 가트너에 의하면 가까운 미래의 키워드로 스마트 디바이스, 사물인터넷 플랫폼, 인공지능 등을 들었다. 이 모든 것들의 공통점은 역시 데이터이다. 스마트 디바이스의 활성화로 무한한 데이터들이 실시간으로 생성되고 있으며, 모든 사물이 연결된다는 사물인터넷시대 역시 어마무시한 데이터들이 생성될 것이다. 더불어 딥러닝을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하고 학습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이를 제4의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의 가상체험을 넘어 가상세계를 꿈꾸는 미래는 이 모든 것들이 융합된 형태로 구현될 것이다. 가상체험을 통한 교육, 게임, 훈련, 여행 등을 위해 사용되는 모든 기기들은 사용자 개개인에 특화되거나 개별화 될 것이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성향, 습관, 경험 그리고 욕구에 따라 보여주는 내용과 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철저하게 해부되고 통제되고 관리될 것이다. 전 세계의 데이터를 통제하는 아마존이나 구글이 현재 그렇게 하고 있다.

아마존의 가격조절 시스템에 대해 알아보자. 아마존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통해 시장의 환경과 개별 고객의 습성에 따라 동일 제품이라도 가격을 실시간으로 조절하여 판매한다. 예를 들어 특정 물품을 구매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원하는 날짜에 배송 받을 수만 있다면 가격이 약간 비싸더라도 물건을 사는 유형인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할인을 받아야만 물건을 구매하는 유형인가에 따라 가격을 달리한다. 경쟁에 대응하면서 지속적으로 물품별 가격을 일일이 확인하고 조절하는 과정은 넋이 나갈 정도로 복잡하다. 이 모든 과정은 엄청난 데이터를 근거로 스스로 학습능력을 발휘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아마존의 이런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온갖 종류의 인공지능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신중하게 우리와 흥정하고, 평가하고, 우리 관심사를 기록한다. 가상현실을 통해 게임을 하든, 교육을 받든, 체험을 하든, 심지어 사이버 애인을 소개받는 일에서 조차 우리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흔적들이 고스란히 기록되고 분석되어 점점 개인에 특화된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에 맞게 여행지를 소개하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교육을 시켜줄 것이고, 흥미를 가지고 덤비는 게임을 소개시켜 주고, 좋아하는 취향의 이성을 소개시켜주기도 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향후 우리가 누군가의 통제와 관리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리는 근거가 될 것이다.

이는 인류 역사에서 전례 없는 낯설고 새로운 영역이다. 세계가 얼마나 편리하고 효율적이며 개인의 욕구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지 감탄하는 와중에, 그런 새로운 체제는 슬금슬금 기어오는 호랑이처럼 눈치 채지 못하게 소리 없이 우리 사회에 엄습할 것이다. 그런 무대 뒤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는 거대한 인공지능이 사람들 각자의 성향과 특성을 조각조각 쪼개고 또 쪼개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이상옥 소장
이상옥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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