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 고린도후서 12장 10절 -

오랜만에 부모형제를 만나고, 가까운 친척, 이웃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기에, 멀고 고단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는 것이 명절연휴의 고향가는 길이다. 좀 이른 추석으로 맞이하는 설익은 과일도, 아직 가시지 않은 무더위도 고향의 정다운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에는 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콩나물 자라듯이 훌쩍 커버린 어린 조카들만큼 눈에 띄게 야위어가고 늙어가는 부모님들을 보면서 삶의 덧없음을 느끼게 하기도 하니 말이다.

​내 어릴적 할아버지 손잡고 피난민처럼 석탄가루 풀풀 날리며 달리던 완행열차(비둘기로 기억한다)에 몸을 싣고, 히들어지게 피어있는 코스모스 사이로 뿌연 먼지와 함께 시골길 비포장 도로를 달리던 버스를 타고 찾았던 선산의 무덤들은 여전히 그대로 있는데, 찾는 사람들은 세대를 달리하고 있다. 자가용을 타고 조상이 묻힌 무덤 가까이 갈 수 있는 편리함이 있는데도 그 때의 불편하고, 고달픔이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사람들은 쓸모 있는 것만 알고, 쓸모없음이 쓸모 있음을 알지 못한다." - 장자 -

​장자가 산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나무꾼이 아름드리나무를 열심히 베면서도 나뭇잎이 우거진 한 나무만은 베지 않았다. 이것을 궁금히 여기던 장자가 그 까닭을 묻자, 나무꾼이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나무는 옹이가 박혀 있어서 잘라봐야 아무 데도 쓸모가 없어요. 그러한 나무를 뭐 하러 뱁니까?”

장자는 그 말을 듣고는 크게 깨달았다. “이 나무는 근본이 좋지 못한 탓으로 오히려 제 수명을 다 누리는구나.”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 있음인 ‘무용지용無用之用’ 사상은 현대와 와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산을 보라 푸른 산은 쓸모없는 나무들이 지키고 있다. 쓸 만한 나무는 다 베어다 제목으로 쓰고, 정원에 옮겨다 심는다. 지구의 허파인 산은 쓸모없는 나무가 지키며, 바다의 허파인 해안선은 벼도 심지 못하고 건물도 지을 수 없다는 갯벌이 지키고 있다.

​당장 이익이 되면 쓸모 있고,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면 쓸모없다고 단정지어버린다. 조금만 멀리 내다본다면 쓸모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쓸모없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더 귀중한 자원이 된다.

산업사회를 거쳐 디지털사회가 되면서 사회는 급속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너무 빠른 세속에 적응하기 급급해 하고,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 둘, 도태되기 시작하였다. 인간 스스로 만든 문명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멀리보고 자존감을 회복하여 삶의 중심으로 되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인간 밖에 존재하는 것들은 인류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그들의 존재감이 인간의 존재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들어 감에 대한 회의보다, 나이들어가면서 해야할 일들이 많아짐에 고마워해야 할 때이다. 우린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의 시스템에 의해 자라고, 배우고, 직업을 가지며, 한 가정을 이루고,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해 왔다. 고맙게도 인류의 발달된 문명은 인간으로하여금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새롭게 주어진 후반전은 내가 진정한 주인으로 살 수 있는 삶이다. 마치 두 번 사는 인생처럼 멋지게 설계하고 폼나게 살 수 있는 신나는 시간인 후반전이 남아있다. 쓸모없다고 생각되어진 후반전을 가장 빛나고 행복한 순간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손에 달려있다.

이상옥 소장
이상옥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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