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 세계 최강자인 대만 TSMC가 적극적인 투자로 독주 체제를 굳혀가고 있어, 이 분야에서도 1위에 올라서겠다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비전 2030’의 실현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파운드리 세계 최강자인 대만 TSMC가 적극적인 투자로 독주 체제를 굳혀가고 있어, 이 분야에서도 1위에 올라서겠다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비전 2030’의 실현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수탁생산(파운드리)의 세계 최강자인 대만 TSMC가 독주 체제를 굳혀가고 있다.”

산업전문매체인 닛게이산교신문은 카리스마 넘치는 창업자가 남긴 철벽의 비즈니스 모델과 막강한 자금 창출력을 토대로 이동통신 ‘5G’의 수요를 흡수하기 위한 투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며 이 같이 보도했다.

또 메모리 최강자인 삼성전자가 10년간 약 133조 원의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파운드리에서도 정상에 올라서겠다(반도체비전 2030)고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TSMC에 흔들림은 없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 미·중 마찰 폭풍,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으로

역사와 정취 배경이 유사해 ‘대만의 교토’로 불리는 대만 남부의 고도(古都) 타이난의 경제가 요즘 들끓고 있다. 2년 전인 2018년에, TSMC가 약 45조 원을 투입해 최첨단 공장 신설 계획을 내놓은 효과로, 사람과 돈이 몰려들며 부동산이나 음식점 등 지역 경기 전반에 활기가 넘친다.

TSMC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에서의 입국이 제한돼, 인력 조달에 애로를 겪고 있다. 당국에 ‘특별 허가’를 얻어 일정 기간의 현지 격리를 감수하고라도 인력을 늘려나간다는 방침이다.

타이난 공장은 지난 4월에 최첨단인 회로선폭 5나노미터 제품의 양산을 개시했다. 올해 하반기에 판매 예정인 미국 애플의 차기 아이폰에 들어가는 CPU를 주로 생산한다. 2022년에는 차세대인 3나노 제품의 양산에 착수할 계획이다. 스마트폰과 서버는 5G의 보급으로 방대한 데이터 처리 능력이 필요한데, 5G 관련으로 가장 중요한 공급기지가 된다.

이런 순풍 속에 있던 TSMC에 갑자기 폭풍이 엄습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5 월 중국 화웨이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TSMC는 매출의 약 15%를 차지하는 2위 고객기업과의 거래를 끊을 수밖에 없게 됐다. 설비투자가 핵심인 반도체업체는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면 단번에 재정 위기에 놓일 위험이 크다. 하지만 TSMC는 요동이 없다.

“2020년 4분기 설비 투자 계획은 불변이다.” 류더인(劉徳音) 이사장(회장에 해당)은 지난 9일 주주총회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사상 최대인 150억~160억 달러(약 18조~19조 원)를 쏟아 붓는다.

■ 현금 흐름은 예술의 영역

호황과 불황의 경기 흐름에 좌우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계속한다는 뜻이다. TSMC를 파운드리의 최강자로로 올려놓은 전략의 진면목이 미중 마찰의 폭풍 속에서도 유효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철벽과 같은 단단한 재무와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양 날개가 있다.

금융 전문가들은 TSMC의 현금흐름(CF)에 경탄을 금하지 못한다. 사업에서 벌어들인 영업 CF의 플러스와 투자 CF에 의한 마이너스가 균형을 이루며 팽창해 가는 구조다. 벌어들인 돈을 재투자해 사업을 확대하는 식으로 경영의 기본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새가 양 날개를 펼친 모양의 그래프는 대담한 투자를 성공으로 이어가는 항적이다. 리먼 사태로 실적이 악화한 2009년에도 거액의 투자를 계속하겠다고 표명했다. 애널리스트들 비판이 쏟아졌지만,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자금수지는 균형을 유지했다. 이 때의 투자가 이후 급속한 성장을 지지했다.

TSMC는 동업 경쟁업체와의 비교에서도 특이함이 두드러진다. 세계 4위 파운드리업체인 대만 UMC는 2016년 4분기까지 2분기 연속 투자 CF가 영업 CF를 초과한 후 투자를 축소했다. 3 위 업체인 미국 글로벌 파운드리즈는 비상장으로 재무 상황이 불분명했는데, 2018년에 최첨단 제품의 개발에서 철수했다. 개발 비용의 팽창으로 투자와 회수의 균형을 제어하지 못해 TSMC와의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TSMC는 2013년 이후 설비투자나 연구개발에 매년 10조 원 이상을 투자해왔는데, 스스로 벌어들인 돈으로 충당해 왔다. 2019년 12월기에는 반도체 수요 침체로 순익이 3453억 대만달러(약 13조 원)로 전기에 비해 2% 감소했다. 8분기 연속의 최고 이익 기록은 놓쳤지만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은 32%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 카리스마 넘치는 창업자가 남긴 철벽의 비즈니스 모델

단단하면서도 높은 자금 창출력은 창업자인 장중마오(張忠謀) 씨가 쌓아 올린 파운드리 모델에 기인한다.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수석 부사장을 지낸 장 씨는 대만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에 호응해 고국으로 돌아와, 1987년에 TSMC를 설립했다. 그리고 고객이 되는 팹리스 설계업체의 등장을 예견하고 세계 최초로 파운드리 전문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했다.

설계와 제조를 분리해 업계 질서를 변혁한 모델이다. 미국 퀄컴과 엔비디아 등 유력한 팹리스 설계회사를 지원하고 함께 성장을 촉진하면서 인텔과 삼성과 함께 반도체 ‘빅3’로 불리게 됐다.

연구개발과 생산에 많은 자금이 들어가는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장 씨가 고집한 것은 수익성이다. 2018년에는 “투하자본이익률(ROIC)은 15~20%는 필요하다”고 재무 지표를 끄집어내 강조했다. 사업 활동에 투입한 자금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벌어들일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TSMC의 과거 5년 평균은 21.4%로 인텔(15.7%)을 웃돈다. 삼성은 약 8%이지만, 사업 범위가 넓기 때문에 비교하기 어렵다.

높은 수익성은 고객에게 충분한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하다. 장 씨는 번 돈을 기술개발에 최우선적으로 돌려 우량고객을 유지했다.

■ 세계 최고 슈퍼컴퓨터 ‘후가크’ 제조도 지원

지난 22일 슈퍼컴퓨터의 계산속도에서 세계 최고를 기록한 후가크(富岳)‘. 그 핵심인 후지쯔의 CPU는 TSMC가 제조했고, 칩 간격을 좁혀 성능을 높이는 TSMC 독자의 ’CoWoS‘ 기술도 사용한다.

2018년부터 선두를 지켜온 미국 IBM의 ‘서밋’은 미국 엔비디아의 이미지처리반도체(GPU)를 대량으로 탑재하는데, 역시 TSMC가 만든 제품이다. 최고를 겨루는 경쟁의 이면에서는 TSMC가 키를 쥐고 있는 것이다.

지적재산권 등을 제공하고, 고객의 디자인을 지원하는 힘도 막강하다. 애플은 지난 22일 컴퓨터 ‘맥’에 자체 개발한 CPU를 탑재한다고 발표했다. 2006년에 인텔 제를 채용한 이후 약 14년만에 교체가 이루어지게 셈인데, TSMC가 설계와 제조를 지원한다.

애플은 이미 독자 개발한 CPU를 탑재하고 있는 아이폰과의 연계를 강화해 나갈 생각이다. TSMC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나가가 Mac용도 맡게 된다. 애플과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졌다.

제조 하청을 넘어 부가가치를 추구해 고객을 끌어들이고, 안정적으로 고수익을 실현하는 게 TSMC의 힘의 본질이다.

“누가 이길지는 예언할 수 없지만, 누군가가 이기면 우리도 승리한다.” 장씨는 TSMC의 힘을 이렇게 표현한다. 화웨이와의 거래는 중단되지만, 어드반스트 마이크로 디바이스(AMD) 등의 수요 증가로 채우면서 미중 마찰의 거친 파도도 견딘다는 것이다.

■ 장 씨의 예언 “삼성과는 전쟁이 된다”

이런 장 씨가 유일한 라이벌로 경계하는 게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신형 아이폰용 수주에서 고배를 마시고 TSMC가 그 수요를 독점하게 된 2016년에, 남아도는 생산 능력을 활용해 TSMC에 가격경쟁을 걸었다. 그 영향으로 미국 퀄컴 등 애플 이외의 고객이 흔들리자, TSMC 내부에서는 가력 인하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장 씨는 이사회에서 “가격 인하는 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이 고집에 따른 부정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가상화폐 채굴업체인 중국 비트메인이나 화웨이 등 새로운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퀄컴과 엔비디아 등 미국 고객도 TSMC에 어느 정도는 계속 주문해, 삼성전자는 TSMC의 아성을 무너트리지는 못했다.

재도전에 나선 삼성전자는 새로운 전략을 내놓았다. 2019년 4월에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에서 설계기능 강화를 강조한 것은 TSMC의 모델을 정면으로 무너뜨리겠다는 결의의 표명으로 읽힌다. 장 씨는 2017년에 “삼성과의 경쟁은 전쟁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바로 파운드리 패권을 건 전쟁이 다시 불붙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호황과 불황에 상관없은 적극적 투자로 일본의 반도체산업을 무너트린 경험이 있다. “10년 간 총 133조 원의 거액을 투자한다”는 계획이지만, TSMC은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서 연간 10조 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어, 투자 자금에서는 호각이다. 철벽과도 같은 단단한 재무와 사업 모델의 양 날개가 TSMC를 세계 반도체 3강을 가능케 했다. 삼성전자가 막강한 업력을 갖추고 있지만, TSMC를 꺾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닛케이산교신문은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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