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명정보로 맞춤형 상품 출시 가능… 유출·보안사고 우려 목소리도 고조

정보통신망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 개정안 등 이른바 데이터 3법이 지난 9일 저녁 천신만고 끝에 국회 본회의 문턱을 통과했다. 법안이 만들어진 지 1년 3개월 만이다.

이들 데이터 3법은 수집·활용 가능한 개인 정보의 범위를 늘려 빅데이터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법안이다.

데이터 3법의 핵심은 '가명정보'를 산업적 연구·상업적 통계 목적으로 활용할 경우 개인동의 없이 허용한다는 것이다. '가명정보'는 이름·주민등록번호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암호화해 추가 정보가 없으면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게 처리한 정보다.

예를 들어 보험 가입 시 보험사에 제공하는 정보가 이름, 주민등록번호, 핸드폰 번호, 나이, 성별, 주소, 직업, 보험가입 건수 등이다. 이 중 이름, 주민번호, 핸드폰 번호의 경우 그 정보 만으로도 개인에 대한 식별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암호화 한 것이 '가명정보'다.

이들 법 통과로 4차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자원으로 꼽히는 데이터 거래에 물꼬가 트이고,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차단한 '가명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에서 데이터를 활용하는 국내 IT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IT 및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번 데이터 3법 통과로 금융권에는 마이데이터(My Data) 서비스가 본격화되고 신용정보회사의 빅데이터 영리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융 당국은 데이터 3법 통과에 맞춰 데이터거래소와 데이터 전문기관을 도입하고, 관련 핀테크 스타트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개인정보 유출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기업 등이 고의적으로 특정인을 알아볼 수 있도록 재식별 작업에 나설 경우 막을 방법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신용정보법은 이같은 경우 형사 처벌(5년 이하의 징역)과 매출의 3%에 달하는 과징금이 부과한다고 명시돼 있다.

신용정보업계 관계자는 "개인이 금융회사에 데이터 처리에 대한 설명요구와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대응권도 함께 도입된 만큼 우려하는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겼다는 점에서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말했다.

데이터 3법 제정으로 가장 크게 달라지는 건 방대한 분량의 ‘비실명화(가명정보) 데이터’ 구축이다.

시중은행이나 카드·보험사 등은 데이터거래소 등을 통해 필요한 고객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맞춤형 상품·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다.

중국의 인터넷은행 마이뱅크(알리바바 계열)나 위뱅크(텐센트 계열)처럼 통신요금 납부 내역, 온라인 쇼핑 정보 등을 활용해 금융거래 정보가 부족한 계층(청년·주부 등)을 겨냥한 중금리 대출상품을 내놓는 것도 가능하다.

자동차 급제동 빈도나 운전시간·거리 등을 따져 모범운전자에게 자동차 보험료를 깎아주는 보험상품, 소비·위치정보 등을 활용해 식당·화장품 할인 쿠폰을 주는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다.

금융권을 넘어 공공기관과 통신·정보기술(IT) 회사의 ‘데이터 합종연횡’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개인에게 특화된 ‘다품종 소량 금융상품’이 대거 출현한다는 기대감도 높다.

이번에 데이터 3법이 통과하면서 데이터 관련 사업을 준비해온 국내 IT업체들은 고무된 분위기다.

금융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은 물론 국민건강보험의 의료정보 등을 바탕으로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도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빅데이터, 클라우드, AI 등 4차산업혁명 신기술의 근간이 되는 데이터를 합법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이들 업체는 '가명정보'와 데이터 결합 등을 이용해 신기술·제품·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게 됐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신산업 분야 19개 가운데 규제로 막혀 있는 12개 분야에 데이터 3법 적용이 가능해진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경우 데이터3법 통과를 염두에 두고 헬스케어 사업을 추진해왔다. 의료 데이터 분석에 필수적인 개인정보 활용이 가능해지면서 사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네이버는 지난해 말 대웅제약, 분당서울대병원 등과 헬스케어 합작법인인 다나아데이터를 설립했다. 카카오도 서울아산병원과 AI 기반의 의료 빅데이터 업체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를 세웠다.

데이터 3법을 데이터경제 활성화의 요건으로 여기던 정부도 한시름 놨다. 특히 지난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AI 국가전략'이 힘을 받을 전망이다.

데이터는 AI를 학습시키는 기본적 인프라로,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인공지능 기술은 고도화된다. 정부 주도로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해 활용하면 미국이나 중국같은 AI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정부는 법 통과 후속조치로 데이터 개방·유통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 데이터 간 융합과 주요 분야 데이터 활용 촉진을 통해 데이터 산업 육성 지원에도 나선다. 금융·의료 등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분야와 스마트 시티, 자율주행차 등 미래 산업 분야의 데이터 활용 정책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안전한 데이터 활용을 뒷받침할 하위법령, 유관 법령 등도 조속히 정비하고 감독기구 독립성 확보를 기반으로 EU(유럽연합) GDPR 적성성 평가 승인도 조속히 추진할 방침이다.

정부는 데이터 3법과 관련됨 모든 부처가 참여하는 '데이터경제 활성화TF'를 출범시키고, 2월 중 종합 지원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테크데일리(TechDail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