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최고 경영자 김우중 회장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한 때 우리나라 재계 순위 2위까지 올라 삼성을 능가하고,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삼성보다 유명한 기업이며,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외치며 전 세계를 지배하던 글로벌 기업 대우가 허망하게 해체되지 20년 만에 큰 별이 진 것이다. 재벌 중심의 나라, 선대가 대대로 대물림하는 타 그룹에 비해 척박한 환경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생력을 키워,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시킨 김우중회장은 당시 대부분의 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보낼 정도로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그룹을 키우는 과정에서 부족한 자본을 금융기관에 의존하면서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

재무를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레버리지 효과에 의해 자기 자본보다는 타인자본을 활용해 기업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국내외 경영환경이 좋고, 글로벌 성장세가 뚜렷했던 80~90년대 이야기다. 신흥경제, 한국을 비롯한 인도,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세가 괄목상대하던 시절에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기존의 선진국들이 시기 질투하기 시작했다. 당시 세계경영을 외치며, 폴란드, 우즈벡, 체코 등 동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대우전자, 대우자동차 공장을 설립하며 유럽을 장악하기 시작한 대우는 미국 자동차 시장까지도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실제로 IMF 직후 미국을 찾은 나에게 당시 소속그룹인 삼성보다 대우를 더 알아주는 미국 기업인들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결국 IMF를 통해 망한 대우자동차를 GM이 인수하게 된 것도, 처음부터 계획적이지 싶을 정도로 미국 자동차 업계를 위협한 것은 사실이다. 당시 대우자동차의 르망은 미국내에서 센세이션을 일르켰다.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했던 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대한민국 재계서열 2위를(1999년 자산과 매출액 기준) 지켜왔던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1990년대 글로벌 우량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듯 했으나 외환위기와 확장경영에 따른 막대한 자금난으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돌입한 후 그룹 해체를 맞았다.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아직도 신흥 개발도상 국가로 급부상하고 있는 베트남에 가보면 (주)대우의 흔적이 뚜렷하다. 수도인 하노이의 중심에 대우호텔이 아직도 건제하고, 건강하던 김우중 회장이 최근까지 머무른 것도 베트남이다. 만약 대우가 망하지 않고 건재했더라면 베트남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의 신흥개발도상국가들은 일본보다 우리나라 기업들과 긴밀하게 협력했을 것이고, 동반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을 것이다.

혹자들의 음모론에 의하면, 대우를 중심으로한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이 눈부시던 시절 그 성장세를 두려워한 세계의 보이지 않은 경제세력들이 은밀하게 준비하여 일부러 한국의 IMF를 촉발해 세계 경제 주도권을 뺏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늘이 김우중 회장의 발인이라 한다. 당시의 화려함으로 보면 가족장이 아니라 그룹장으로 엄청난 세를 과시할 텐데, 무한한 아쉬움을 남기고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 누구보다 첫 직장을 대우그룹의 비선 계열사에서 시작한 나로써는 매우 유감이고, 깊은 회한이 들 정도로 아쉬움이 남는다. 더불어, 대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에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깊은 아쉬움을 남기고 영면에 드는 (고)김우중 회장님의 명복을 빌어본다.

​"대학을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에 독립해서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어요. 내 생각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가합니다. 사람이 쉬면서는 아이디어가 안 나옵니다. 항상 머리가 돌아가면서 어떤 것하고 접목해서 아이디어가 생기고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겁니다. 또 어떤 일이든지 쉽게 얘기해서 미쳐서 돌아가야 도에 달하고, 도에 달하면 보이는 것이 많고 보이는 게 많으면 창의적인 게 더 많이 나옵니다." (연세대 공대생들과의 대화/1993년 10월 27일)

이상옥 소장
이상옥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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