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트업기업 세레브라스 시스템즈가 아이패드보다도 약간 큰 세계 최대의 AI용 칩을 개발해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기업 세레브라스 시스템즈가 아이패드보다도 약간 큰 세계 최대의 AI용 칩을 개발해 주목을 끌고 있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개발은 소형화를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인데, 거꾸로 태블릿PC 크기의 거대한(?) 칩이 등장해 주목을 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활황 국면의 인공지능(AI)용 프로세서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칩이 나왔다며, 미국 캘리포니아에 뿌리를 둔 스타트업기업 세레브라스 시스템즈(Cerebras Systems)의 공룡 칩 개발 소식을 최근 전했다.

이 칩은 태블릿PC ‘아이패드’의 표준 모델의 표면적보다도 약간 크다. 경쟁 상대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최대 칩으로 군림해 온 GPU(그래픽처리장치)의 56배나 된다. 덩치만큼 먹는 양도 어마어마하다. 소비전력이 데이터센터에서 사용되는 높이 6피트(약 1.8미터)의 랙 1.5개와 맞먹는다.

거의 4년의 개발기간을 거쳐 지난 19일에 공개된 공룡 칩은 반도체 업계가 AI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고심한 끝에 나온 역발상의 결과물로 평가된다.

동시에 가장 복잡한 AI의 문제에 사용되는 컴퓨터의 계산능력인 ‘컴퓨팅’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분야에서는 지난달 미국의 연구기업 오픈AI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의 자금을 조달하고 하드웨어의 기하급수적인 진보에 편승해 인간 수준의 AI을 실현하겠다고 나섰다.

미국의 반도체애널리스트 패트릭 무어헤드 씨에 따르면, 대부분의 반도체 제조업체는 ‘칩렛(Chiplet)’이라는 아주 작은 구성부분을 만들어 왔다. 현행 최첨단 칩은 칩렛에서 조립되고 있다. 그러나 세레브라스는 이러한 기존 방식을 버리고 실질적으로 단일 칩에 컴퓨터 시스템을 싣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수 년 전에 시작된 차세대 AI 전용 칩 개발 경쟁은 드디어 임계점에 달했다. 미국 인텔, 이스라엘 하바나랩스(Habana Labs), 영국 스타트업 그패프코어(Graphcore) 등 여러 회사가 첫 번째 칩의 납품을 개시하거나 연내 납품을 추진 중이다. 세레브라스는 이미 여러 고객에게 칩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래 기업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터넷기업이 다루는 대규모 컴퓨팅에 최적의 칩으로 인정은 받고 있는 것이다.

AI 칩은 50개 이상의 업체가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 대부분은 대량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심층학습(딥 러닝)보다도 다음 단계인 ‘추론’ 과정, 즉 훈련된 AI 시스템을 현실 세계의 일들에 적용하는 작업에 이용되고 있다. 이 과제에 뛰어든 곳은 세레브라스나 그래프코어, 미국 웨이브 컴퓨팅, 중국 캠브리콘 테크놀로지스(Cambricon Technologies) 등 소수의 스타트업이다.

이들 기업 중 일부는 아직 제품을 내놓고 있지 못한 상태인데도 기업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세레브라스의 경우 지난해 말에 기업가치가 약 16억 달러로 평가됐고 벤처캐피털로부터 2억 달러 넘게 조달했다.

AI용으로 새로운 형태의 칩이 요구되는 것은 인간의 신경을 모방하는 뉴럴 네트워크(신경망)의 훈련에 대량의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네트워크는 이미지 인식이나 언어 이해 등의 임무를 다루는 심층학습 시스템에 이용된다.

뉴럴 네트워크는 거대한 피드백의 고리(루프)로 작동해 형태가 없는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학습을 하면서 정보를 재이용한다. 이 작업에 필요한 두뇌에 해당하는 칩 내의 컴퓨팅인 ‘코어’는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는 범용 CPU의 코어보다도 단순하다. 하지만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대규모의 심층학습 모델을 훈련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줄이는 동시에 소비전력을 절약해 비용을 억제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코어를 묶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과제를 안고, 세레브라스는 해법 찾기에 매달린 끝에 반도체 칩 공장에서 현재 생산 가능한 최대 크기의 직경 300mm 실리콘 웨이퍼에서 정방형의 단일 칩을 추출해냈다. 웨이퍼는 일반적으로 수십 개의 칩으로 나뉘어 사용된다. 대형 우표보다 큰 기판에 회로를 에칭 처리하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레브라스는 ‘다이스(가공 틀)’라는 웨이퍼상의 다수의 서로 다른 섹터를 이어붙이는 방법으로 이 제약을 극복하려 했다. 이 방법으로 다이스 간의 직접적인 상호 작용이 가능하게 되고 실리콘 기판 전체가 실질적인 대형 프로세서가 된다.

심층학습에 특화된 칩을 개발하는 기업의 대부분은 칩의 여러 프로세싱 코어와 함께 나열되는 컴퓨팅 메모리에 데이터를 새겨 넣는 설계를 채택하고 있다. 발생할 수 있는 지연을 최소화하면서 업무를 처리하고 아주 적은 전력 소비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다음 작업은 코어를 격자 모양으로 연결해 뇌의 시냅스(신경세포끼리의 결합 부분)처럼 상호 작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세레브라스는 40만 개 코어를 연결해 이 프로세스를 최고 단계로 끌어 올리는 동시에 모든 처리를 단일 칩에서 수행하는 효율성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AI 개발 경쟁에 불이 붙기 시작한 4년 전에 AI칩 스타트업 나바나 시스템즈를 인수한 인텔은 다수의 칩을 하나의 큰 어레이(배열)로 네트워크화 하는 방법으로 같은 효과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이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았으며 연내 출시 예정인 시스템의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애널리스트 무어헤드 씨는 설령 인텔이 수천 개의 코어를 큰 격자 모양의 시스템으로 연결할 수 있었다고 해도 세레브라스 칩과 효율성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세레브라스 기술은 단일 칩 위에 모든 것을 담는 방식이어서 구조적으로 우위에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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