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구글이 2021년 가을에 출시예정인 스마트폰 ‘픽셀(Pixel)6’를 공개했다. 주목을 끄는 것은 자체 설계 프로세서인 ‘텐서(Tensor)’를 탑재한 점이다. 지금까지 구글은 퀄컴에서 만든 칩을 사용해 왔는데, 픽셀6에서는 자체 설계 칩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에서는 카메라의 성능이 경쟁의 축이 되고 있다. 사용자가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촬영 한 사진은 SNS에 실려 공유된다. 이미지가 뛰어나면 SNS 상에서 삽시간에 소문이 퍼져 단숨에 유명세를 탄다. 스마트폰을 팔기 위해서는 카메라 성능에서 경쟁사와 차이를 두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은 얇은 두께가 요구되기 때문에 부피가 큰 카메라 센서를 내장하는 게 곤란하다. 최근 일본에서는 독일 라이카 카메라가 샤프와 협업으로 디지털카메라에 들어가는 1인치 크기의 센서를 내장한 스마트폰을 출시해 화제가 됐지만, 그래도 아직은 스마트폰용으로는 소형 센서가 주류다.

그래서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화질을 높여왔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 애플과 중국 화웨이다. 이들 업체는 독자 프로세서에서 AI를 작동시켜 이미지 품질을 향상시켜왔다. 스마트폰이 내장하는 프로세서를 통해 화질을 향상시키는 수법을 가리켜 ‘컴퓨테이셔널 포토그래피(computational photography)’라고 부른다.

구글의 텐서도 AI 처리가 강점이다. 지금까지 구글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클라우드에 올려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올리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따라서 구글이 보유하고 있는 이미지 처리 기술을 스마트폰에 구현하려면 바로 독자 설계의 프로세서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패권을 잡기 위해서는 이제 독자 설계의 프로세서는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iPhone)12’ 시리즈에 탑재하는 ‘A14 Bionic’이 있고, 삼성전자는 ‘Exynos 시리즈’가 있다.

화웨이도 산하의 하이실리콘이 개발한 ‘Kirin 시리즈’를 갖고 있다. 다만 화웨이는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로 프로세서의 제조를 반도체 파운드리인 대만 TSMC에 위탁할 수 없게 돼 버렸다. 이 때문에 최근 발표한 신형 스마트폰 ‘P50 시리즈’에서는 Kirin 대신에 퀄컴 칩을 탑재한 모델도 준비할 수밖에 없게 됐다. 게다가 미국에서 이동통신규격 ‘5G’ 지원 제품의 거래가 금지돼 있기 때문에 4G만 지원할 수밖에 없다. 5G를 주도해 온 화웨이에게는 굴욕적인 신제품이 돼 버린 셈이다.

화웨이 스마트폰은 구글의 어플리케이션 서비스 플랫폼 ‘구글 플레이(Google Play)’를 탑재 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판매 점유율이 떨어지는 추세다. 또한 프로세서에서 우위에 오르지 못했다. 화웨이는 중국 자체 공장에서 Kirin를 생산하는 게 목표이지만 어려운 상황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스마트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도 독자 설계 프로세서는 절대 조건이 되고 있다. 자체 설계 프로세서라면 운영체제(OS)에 맞는 사양이 가능해져 처리를 효율화하거나 소비 전력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스마트폰용 OS와 자체 설계 프로세서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애플과 구글은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구글은 스마트폰 판매량에서 애플과 비교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열세다.

애플이 자체 설계 프로세서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은 전 세계에 연간 약 2억대나 판매되는 아이폰에 동일한 프로세서를 장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조 물량이 많으면 그만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이익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차기 제품 개발에 자금을 여유있게 돌릴 수도 있다.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iPad) 뿐 아니라 맥(Mac)에도 자체 설계 프로세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애플이 프로세서 설계라는 위험이 큰 비즈니스에 힘을 쏟을 수 있는 것은 아이폰이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구글의 픽셀 시리즈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판매량이 많다고는 말하기는 곤란하다. 구글이 자체 설계 프로세서 사업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픽셀을 더 많이 판매할 필요가 있다.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곳은 신흥 시장일 것이다. 구글은 일찍이 신흥국에서 ‘안드로이드 원(Android One)’이라는 저가 스마트폰의 판매에 힘을 쏟았다. 구글은 신흥국에서 인터넷 보급을 위해서는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스마트폰의 가격을 낮추는 데는 프로세서의 가격이 걸림돌이 된다. 저가 프로세서를 쓰면 스마트폰 성능이 떨어진다. 그것을 클라우드로 보완한다고 해도 신흥국의 통신환경은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신흥국의 스마트폰은 저렴한 동시에 AI 처리에 필요한 성능을 가진 프로세서가 필요하다.

구글은 이번에 플래그십 모델인 픽셀6에 센서를 탑재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텐서의 저가 버전을 개발해 신흥국을 겨냥한 자사 브랜드의 엔트리 스마트폰에 탑재한다며 단번에 판매량을 늘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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