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전문 브랜드에서 나온 스마트폰은 어떨까.

100년 전통의 독일 카메라 업체 라이카 카메라가 이달 중순 최초의 자사 브랜드 스마트폰을 발표해 주목을 끌고 있다.

제품명은 ‘Leits Phone 1(라이츠 폰 원)’으로 “광학기업 라이츠가 만든 스마트폰”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카메라 명가답게 스마트폰에서는 최대급이 되는 1인치 크기의 이미지 센서를 장착해 디지털 카메라 수준의 화질을 내세운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1인치 이미지 센서는 지금까지 디지털 카메라에서도 상위 기종에 사용돼 왔다. 일반적인 스마트폰용의 약 5배 크기로 많은 빛을 흡수해 피사체의 배경을 자연스럽게 처리하고 어두운 장소에서도 흡수력이 강하다.

그런데 이 뛰어난 카메라 성능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내용이 이어 발표됐다. ‘라이츠 포 원’을 일본 시장에서만 판매하기로 한 점이다. 소프트뱅크가 독점 판매한다.

사실 라이카는 오래 전부터 일본 기업과 협업을 통해 자신의 비즈니스를 전개해 왔다.

세계 카메라 시장을 일본 업체가 석권하고 있던 1972년, 미놀타와 제휴해 필름 카메라 본체를 이 회사에서 조달했고, 이어진 디지털 시대에는 파나소닉과 손을 잡았으며 지금도 이 회사 디지털카메라를 기초로 해 만든 카메라를 판매하고 있다. 2016년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스턴트(즉석)카메라가 유행하던 2010년대 중반에는 ‘체키’로 알려진 후지필름의 손을 잡았다.

이 모든 변화의 시기에, 라이카는 자신의 장점인 렌즈 기술에 최대한 활용해 고유의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생존해 왔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위축되고 대신에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SNS 등에 올리는 라이프 스타일이 보편화 돼 있는 지금, 라이카는 또 새로운 파트너로 소프트뱅크를 선택했다.

특이한 점은 전 세계에서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글로벌 카메라 기업인데도 자체 브랜드의 스마트폰을 일본 한정으로 투입하는 것이다.

그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온라인 발표 회견에서 언급되지 않은 중국의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에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한다.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이 거대 기업과 라이카는 글로벌 협력 관계에 있다.

2016년에 나온 화웨이의 고급 기종 ‘P9’에는 라이카가 감수한 카메라 렌즈가 탑재됐다. 화웨이 측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일로 전해진다.

저가를 앞세워 급성장해 온 화웨이에게는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게 과제였다. 고급 카메라의 대명사인 라이카와의 협력은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서 평가를 높이는데 분명 도움이 된다. 일본의 통신사업자들도 화웨이 기종을 취급하기 시작했고, 2018년에는 NTT도코모가 라이카 렌즈가 장착된 최상급 모델 ‘P20 Pro’를 독점 판매했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2019년 5월 화웨이에 대한 사실상의 금수 조치를 내리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 후 기종에서는 미국의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나 구글이 만든 서비스를 제공 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일본 시장에서는 도코모와 KDDI, 소프트뱅크 등이 화웨이 스마트폰 판매를 잇따라 중단했다. 통신 사업자에게는 G메일을 사용할 수없는 단말기는 소비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해 있었기 때문이다. 도코모의 경우, 다양한 설비 제조업체의 기기를 조합해 ‘5G’ 통신망을 구축할 수 있는 오픈 기술을 미국에 팔려고 했던 일이나 중국 포위망 구축에서 미국과 일본이 긴밀하게 협력했던 일도 배경으로 작용한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각국에서는 화웨이 단말기의 판매가 계속되고 있지만 일본 시장에서는 거의 배제됐다. 결과적으로 라이카는 일본 스마트폰 시장에 진입할 발판을 잃은 모양새가 됐다.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해 라이카 팬이 많고 2006년에 세계 최초의 직영점을 도쿄 긴자에 개설하는 등 중요한 시장”이라고 라이카 측은 역설한다. 그런데 이제, 젊은 층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일본의 스마트폰 보급 대수는 세계 7위로, 이 스마트폰을 통해 어떻게 접근 할 것인가가 과제가 돼 왔다.

“2019년 7월 사주인 안드레아스 카우프만 씨를 직접 만나고 협력을 시작했다”소프트뱅크 측은 라이카와의 협업 과정을 설명한다. 어느 쪽에서 먼저 협업 얘기를 꺼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양측의 이해가 서로 맞물려 이루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소프트뱅크로서는 특색 있는 단말기가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서는 통신 품질의 차이가 사라지고 단말기도 글로벌 모델을 중심으로 차별화가 어려워지고 있다. 매력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소프트뱅크는 라이카에 이어 11월부터는 가전업체 발뮤다가 감수한 스마트폰도 독점판매할 예정이다.

일본에서는 통신사들이 단말기를 다른 통신사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SIM 록’이라는 장치를 만들어 교체를 막아왔다. 하지만 당국에서는 SIM 록의 금지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교체 빗장을 해체해 하락하고 있는 통신 요금을 시장 경쟁을 통해 더 낮추려는 의도다.

소프트뱅크는 저렴한 가격의 서브 브랜드 ‘와이 모바일’을 출범시켜 타사에서 가입자를 빼내온 경험이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수익력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용량 서비스 이용이 중심이 되는 메인 브랜드에서 가입자를 어떻게 늘리느냐가 관건이다. 고화질이 장점인 라이카 스마트폰이라면, 데이터 용량이 큰 이미지를 SNS 등에 올리는 사람이 중심이 돼, 대용량 서비스를 계약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라이카도 소프트뱅크도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아니다. 때문에 설계 및 생산은 샤프가 맡는다. 이를 계기로 샤프는 라이카와 장기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라이츠 폰 원’과는 별도로 샤프 브랜드 스마트폰 ‘아쿠오스R6’에서도 라이카와 협력한다. 카메라 부분만 라이카가 감수하며, 가격은 13만3920 엔(약 140만 원)이다. 이 기종은 소프트뱅크 이외 도코모에서도 판매할 예정이다.

물론 이번에 발표된 라이카 스마트폰이 샤프의 글로벌 경쟁력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라이카는 제휴에 관한 보도자료에서 일본 시장에 한정한 제휴라고 명기했다.

화웨이는 2021년, 라이카 감수 렌즈를 탑재한 새로운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며, 양사의 협업은 계속된다. 하지만 일본의 통신사가 그 제품을 취급할 것이라는 얘기는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라이카 스마트폰’의 등장은 이런 일본 시장의 사정이 낳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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