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영기원 여이동사(戒盈祈願 與爾同死)' 

-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

조선 후기의 무역상으로 최초로 국경지대에서 인삼무역권을 독점, 천재적인 상업수완을 발휘한 거상 임상옥에 대한 소설에 나오는 말입니다. 임상옥은 당시 베이징(北京) 상인의 불매동맹(不買同盟)을 교묘하게 깨뜨리고 원가의 수십 배에 팔아 막대한 재화를 벌어 굶주리는 백성 및 수재민을 구한 일화로 유명합니다.

2002년 겨울 전국을 강타한 드라마 “겨울연가” 와 함께 드라마로 만들어져 유명하게 된 임상옥에 대한 이야기에서 나온 “게영배” ..... 당시엔 겨울연가 못지않게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이며, 이미 소설로도 장안에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드라마에 흥미가 없었던 내가 우연히 본 장면이 임상옥이 중국 연경에서 홍삼을 파는 장면에 매료되어 책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必死卽生, 必生卽死'

- 반드시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요, 살기를 꾀하면 죽을 것이다.......

마침.... 연경에서 홍삼을 파는 임상옥이 약제상들의 불매동맹에 맞서 싸우는 중에 너무 낮은 가격을 요구하는 약제상에게 헐값에 팔 수 없어 고민을 하고 있던 장면이었습니다.

어떻게 대처하나 궁금했는데...결국.... 가져온 홍삼을 모두 태워버리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게 되더군요.... 주요 약제에 필수적인 홍삼이 타는 걸 지켜본 연경 약제상들이 다급해져서 본인들이 원하는 가격은 고사하고 훨씬 비싼 가격에 구입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死'가 곧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다는 걸 새삼 느껴봅니다.....

어쨋든... 이 자그마한 감동이 책을 읽게 만들었고, 저는 그 책속에서 계영배란 짧지만 깊은 의미를 내포한 단어를 얻게 되었습니다.

욕망의 유한함을 깨닫고, 그 욕망의 절제를 통해 스스로 만족하는 자족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제일의 생활철학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사람들이 재물과 색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마치 칼날에 묻은 꿀을 탐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한 번 입에 댈 것도 못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핥다가 혀를 상합니다. 

모든 욕망 가운데 성욕보다 더한 것은 없다. 성욕의 크기는 한계가 없는 것이다. 다행이 그것이 하나뿐이었기에 망정이지 둘만 되었어도 부처가 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애욕을 지닌 사람은 마치 햇불을 들고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손을 태울 화를 입게 될 것이다.

거상 임상옥의 마지막 유혹은 애욕이었습니다.

한 여인에 대한 애욕이 그를 쇄하게 할 수도 있었으나 평범한 찾잔에 불과한 계영배가 벗어나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계영배.......

그 잔에 술을 가득 채우면 술은 어느새 서서히 다 살아져 버리고 칠부능선만큼만 채우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신비한 술잔입니다.

그렇습니다. 욕망이란 끝이 없습니다. 채워도 채워도 만족함이 없고 항상 부족함만 남게 마련입니다.

적당한 선에서 자족하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활용한다면 삶은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냉전이후 "나 홀로 힘의 축"이 되버린 최근의 미국을 보고 있으면 이런 자족하는 마음의 중요성을 더욱더 느끼게 됩니다.

몇 해 전만해도 여러 가지 면에서 부자나라인 미국은 다른 나라들을 도와주는 여유러운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힘과 경제력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모든 것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욕망이 9.11테러를 야기시켰고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자그마한 것에도 집착하는 추잡함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욕망 때문입니다.

모든 고통의 근원이 모든 것을 가득 채우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가장 큰 욕망은 무욕이며, 가장 큰 만족은 바로 자족임을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계영배(戒盈杯)....

적당히 채우는 것에서 만족하는 여유로운 삶을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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